1894년부터 1945년 태평양전쟁까지, 제국 일본은 시각적인 매체를 통해 전쟁에 대한 열기를 고조시켰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동아시아는 격동의 시기를 겪었고, 특히 1854년 미국과의 화친조약을 체결한 이후 일본은 서양과 본격적으로 교류하며 서구식 근대화를 추구했다. 이 시기에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구의 문물과 제도를 도입하고, 천황을 부활시키며 독특한 형태의 근대화를 이루어냈다. 또한 일본은 조선, 만주, 동남아시아 등을 점령하려는 군국주의 논리로 무장하고, 타국을 끊임없이 침략해 영토 확장을 도모했다. 1894년부터 1945년 태평양전쟁의 패배로 끝나는 일본 제국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펴양전쟁 등 거의 10년마다 전쟁을 벌였다.
그 배경에는 전쟁을 "즐기"는 지도층과 과도한 군비 예산 수용, 또 전쟁을 지지한 여론이 있었다. 당시 일본 국민은 왜 그토록 전쟁을 열렬히 지지했을까. 20년간 동아시의 이미지를 연구해온 기시 토시히코는 제국 일본이 강렬한 시각 이미지를 통해 국민의 "전쟁 열"을 부추기고, 전쟁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었다고 주장한다. 매체를 통한 이미지와 정보의 전달은 단순한 전달을 넘어, 자국 여론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프로파간다의 기능을 가진다. 예를 들어 1890년대 청일전쟁 시기에는 판화가 유행했다. 청일전쟁의 시작과 함께 일본은 "신문검열 긴급 칙령"을 발표하고, 외교 및 군사에 관한 사건을 신문이나 출판물에 게재할 때 행정청 또는 내부대신의 검열과 허가를 받도록 의무화 했다. 속보성을 띤 판화는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판화들은 전쟁물의 포스터로 사용되면서 대중문화로 침투했다. 당시 일본 국민이 얼마나 전쟁에 취했는지, 얼마나 이런 간행물에 심취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예로, 장난감 가게에서는 총기와 군모 등을 판매하고, 술집에서는 "황국", "대승리", "백전백승"과 같은 상표를 붙인 술이 판매되고 있었다. 1904년부터 시작된 러일전쟁 시기에는 인쇄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사진"을 게재한 신문과 "러일전쟁 사진집" 등 화보나 잡지가 인기를 끌었다. 엽서도 그 중 하나다. 전선의 병사들에게는 41종의 "위문 엽서"가 무료로 배포되었고, "전쟁 기념 엽서"도 따로 등장했다. 관과 민이 함께 엽서를 제작하고, 이에 전문 전쟁 엽서를 수집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19세기 말에는 흑백 무성영화의 등장으로, 러일전쟁 관련 단편 영화는 공개 전부터 티켓이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910년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당시, 전쟁을 위한 총동원 체제가 갖춰졌지만, 요미우리 신문과 같은 보도 기관은 프로파간다의 역할을 자체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전시 여성들의 마음가짐"이라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진보적이라 불리는 아사히 신문조차 "칭다오 함락"을 축하하는 기업 광고를 게재하거나 전황을 보도했다. 이처럼 제국 일본기에 매체는 전쟁의 "불을 지피는 역할"을 자처하기에 서슴치 않았다. 그 절정은 중국과의 전쟁을 위한 군관민산이 밀접하게 결합할 때 나타났다. 이 시대 모든 전쟁 보도는 군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애국 행진곡을 부르는 소년소녀의 모습이 실리는가 하면, 아사히 신문은 육군성과 해군성의 후원으로 "일중전쟁 성전 박람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대중들에게 일중전쟁이 "성스러운 전쟁"이라는 점을 각인시키기 위해 선전 활동을 하루도 끊이지 않았다. 1943년 제국 일본은 연합국에 맞서기 위한 국방 강화책으로 "대동아 공영권"을 구상하고 유포했으며, 유아용 만화책도 출판했다. 국민 전체가 이렇듯 비정상적으로 전쟁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매체의 동원이 한몫하고 있었다. 이런 선전 활동은 현재도 일부 국가들에서 참조되고 반복되고 있다. 소수인들에 대한 비난과 차별도 진행형이다. (oldpaper 20240925)
'국제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제재에 눌린 이란, 언제 숨통 트이나. (0) | 2024.09.26 |
---|---|
호주에 드리운 경기 침체 그림자, 헤쳐나올 수 있을까. (0) | 2024.09.26 |
중동, 북아프리카, 경제 불확실성 지속 존재. (0) | 2024.09.25 |
미국 여론, 트럼프가 경제 더 잘 알아. (0) | 2024.09.23 |
호날두 미래는? 루이스 카스트로 감독의 결별. (0) | 2024.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