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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질투, 심지어 병적인 질투는 연애 뿐만 아니라 우정도, 가족관계도 해친다. 어떻게 하면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은 엄연히 질투하는 동물이다. 인격 파멸까지 이어질 수 있는 질투에서 헤어나는 방법을 배우려면 냉정하게 사물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성숙도가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질투는 일단 과도한 피해망상에서 시작된다보 봐도 무방하다. 누구도 질투심 많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질투란 인간이 가진 원시적 마음의 매커니즘을 자극하는 존재다. 어린 아이는 엄마의 젖을 독점하려고 한다. 아이에게 주위 환경은 가혹하다. 때문에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조차 아이에게는 견디기 힘든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을 쏟아줄 사람과의 만남이 없다면 아이는 벌거벗은 채 야생에 홀로 던져진 모습이다. 아이가 엄마에게 매달리거나 다른 사람을 경계하는 것은 원초적 본능이다. 이는 인생 여러 단계에서 질투로 나타나게 된다. 인간에게 관대함이 생기는 것은 조금 뒤에 있을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것을 줄 때부터, 아이는 안쪽과 바깥쪽을 구분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부분을 깨닫는다. 인간은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즉 극도의 경각심을 앞세우는 원초 단계를 넘었을 때에야 비로소 아낌없이 줄 수 있다. 거기서 겨우 주는 것, 감사하는 것, 성실한 마음이 원초적 본능을 넘어 마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대항의식을 가진 단계에 머무른 채 감사, 나눔, 타인의 인정을 넘지 못하면 망상의 세계에 남아 질투로 이어진다. 의외로 질투심이 많은 사람은 적지 않다. 어른이 되어서도 질투심이 강한 사람은 극단적인 오만과 질투를 세트로 소유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상대방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인식하고 행동한다. 좋아하기 때문에 독점하고 싶다는 말은 마치 질투가 정당한 것처럼 들린다. 질투심 과잉은 성숙도가 부족한 표현이다. 어찌보면 비참한 존재라고 해야겠다. 입장을 비틀어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감시하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젖을 빼앗기는 것이 두려운 아이로 돌아가 버리고 있는 것이다. 가정과 사회의 책임도 적지 않다. 영국에서는 "아기 폐하"라는 말도 나올 지경이다. 다 큰 어른이 삶의 규칙과 사회의 룰에 적응하지 못한 채, 성장하지 못한 아픔을 겪는 중이기 때문이다. 질투심과 관대함은 공존할 수 없을까. 사실 질투는 양면성도 있다. 자신과의 싸움이다. 질투심을 이기면 관대함과 유연한 마음을 소유한 것이고, 타인을 인정한 것이다. 반면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면 정신적 파멸이다. 그때밖에 존재하지 않는 순간, 덧없는 잠깐의 시간, 생명의 움직임 자체를 받아들여 그 달콤함에 취하면 질투는 이어진다. 내가 지배하고, 나만 봤으면 좋겠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로 있으면 좋겠다는 사유방식은 자신을 경직된 세계로 이끌어 버린다. 그것은 꼭두각시의 세계, 공상 속에만 존재하는 세계이다. 인간이 질투에 빠지면 세상의 진짜 모습과는 완전히 어긋나기 때문에 슬픈 결말로 안내된다. 질투심이 많은 사람은 안타까운 사람이다. (oldpaper 20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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